앞선 포스팅에서 플로티누스는 미의 필요조건으로 균제를 거부했다. 미를 결정하는 기준은 형상-이데아이며 이에 가까울수록 아름답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 영혼은 형상(일자)에 대한 친근함에서 오는 기쁨을 경험한다.
플로티누스는 이에 더해 ‘통일성’과 아름다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데아-형상이 들어가게 되면 그곳에서는 형상이 다양한 부분들로부터 하나의 통일성을 이루게 될 어떤 것을 분류하고 통합한다. 그것은 혼란을 조화로 회복시키고, 그 부분들의 총합에 하나의 조화로운 통일성을 부여한다. 왜냐하면 그 이데아는 하나의 통일성이며 그것이 주형하는 것 또한 다양성이 허용되는 한에서 통일적인 것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하여 통일성을 지니게 된 것에 기초해 미는 자존적으로 총합의 각 부분들에 나타난다. 어떤 자연적 통일성, 즉 어울리는 부분들로 된 어떤 사물 위에 비출 때 미는 그 전체로 나타난다. 따라서 예를 들어 기능에 의해 부여된 부분들의 전체로서의 가옥의 미가 있고 어떤 자연적 성질이 하나의 돌에 부여하는 미가 있다. 이것이 신으로부터 유출된 사유 속에서의 교감에 의해서―질료적 사물이 아름답게 되는 방식인 것이다.”
앞서 플로티누스가 논증하길 미와 균제의 등식을 거부한 이유 중 하나는 단순한 사물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못하기 때문이었다. 플로티누스는 단순한 것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위해서 통일성이란 개념을 활용한다.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형상-이데아는 사물에게 하나의 통일성을 부여한다. 이는 복잡한 사물이든 단순한 사물이든 모두 적용된다. 집을 예시로 들어보면 집의 각 부분들은 모여서 집이라는 기능을 수행한다. 전체로 놓고 보면 이는 집의 기능을 수행하는 통일성을 찾아볼 수 있고 바로 여기서 아름다움이 결정된다. 단순한 사물일 경우 하얀 배경이라든지 햇빛, 부드러운 음조는 시종일관 동질적이다. 바로 그 동질성에 의해 그것들은 통일성을 이룰 수 있고 그럼으로써 아름다울 수 있다.
통일성은 질료를 한데 묶어 통제해 감상자로 하여금 질료를 통해 이데아-형상을 식별하게 해 준다.그런데 미는 질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행동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들은 어떻게 아름다운지 식별할 수 있는가? 플로티누스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먼저 추한 영혼을 고찰해볼 것을 추천한다.
추한 영혼은 “방탕하고 부정하다. 온갖 쾌락으로 가득하고, 내적 불화로 고통당하며, 그 비겁함에 따른 공포와 소심함에 따른 질투에 괴로워하는 것” 등이다. 여기서 플로티누스는 악은 외부에 의해 영혼이 더럽혀지고 혼란해진 것으로 정의 내린다.따라서 플로티누스는 도덕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영혼이 외부 요인과 조화를 이루는 상태, 즉 외부와의 통일이 되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정신적인 미에서도 플로티누스는 통일성을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미(통일성)은 곧 선과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물론 다른 곳에서 플로티누스는 “선과 미가 공통된 원천에 참여하 같은 이념적 속성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지만 존재의 위계에서는 선이 더 우위에 있다”(I, viii, 2)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는 엄밀히 미와 선을 분석하자면 플로티누스가 선을 미보다 더 우월한 개념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플로티누스의 통일성 개념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해 분석해보았다.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미와 선의 동일성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플로티누스의 절대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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